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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알폰소 쿠아론의 <칠드런 오브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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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bemess 2025. 10. 1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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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대와 희망의 시작

알폰소 쿠아론의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2006) 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울림이 사라지지 않는 영화다. 2027년, 인류가 18년 동안 새 생명을 보지 못한 세계. 사람들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잊고, 도시는 분열과 폭력으로 가득하다. 스크린 속 런던은 절망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닮아 있다. 난민, 정치적 극단, 냉혹한 경제 시스템 — 신문에서 읽는 현실의 단어들이 영화의 배경으로 녹아 있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커피숍 안 TV화면에서 ‘지구상 마지막 젊은이’의 죽음이 보도된다. 그리고 폭발이 터진다. 일상의 공간 속 비정상이 너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세계, 그 안에서 주인공 테오가 등장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사회가 멈췄을 때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을까’라는 질문을 붙잡게 된다.

냉소에서 헌신으로, 테오의 여정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과거 이상을 좇던 운동가였지만, 지금은 모든 걸 체념한 채 살아가는 남자다. 그러던 그가 옛 연인 줄리안(줄리안 무어)으로부터 한 여성을 안전히 이동시켜 달라는 의뢰를 받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임신한 여성 키, 그녀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다. 이 ‘기적’ 같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신념과 생존, 체제와 희망 사이의 갈등으로 방향을 틀어간다.

나는 테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가 겪는 무력감, 폭력 속 인간성의 부재, 그리고 작고 소박한 희생의 결단.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테오가 흠뻑 피를 흘리며 키와 아기를 바다 건너로 보내는 순간, 삶의 무게와 구원의 의미가 동시에 밀려온다.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움직이지만, 나는 숨을 죽인 채 그의 희생을 지켜본다.

 

 

전율의 롱테이크, 리얼리즘의 극치

칠드런 오브 맨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롱테이크 연출이다. 알폰소 쿠아론은 단 한 컷으로 이어지는 전쟁터와 차 안 총격 장면을 통해 ‘현장감’의 개념을 다시 정의한다. 카메라 렌즈 위에 실제 피가 튀는 순간조차 컷이 들어가지 않는다. 관객은 테오의 뒤를 따라가며 그의 혼란과 공포를 실시간으로 체험한다. 이 참혹한 리얼리티는 단순한 기술적 실험을 넘어 ‘전쟁 속의 인간’을 생생히 증언한다.

영화 속 폭력은 관람객에게 미학적 자극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피로감과 슬픔을 남기며,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세계에 과연 희망은 존재하는가”를 묻게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암담함 속에서 한 줄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올 때, 모든 총성이 멈춘다. 그 정적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영화는 그 순간 인간 본성의 가장 순수한 영역을 증명한다.

 

사회적 은유, 그리고 우리 시대

이 영화의 세계는 허구지만, 그 안의 문제들은 우리의 현실이다. 정부는 난민을 탄압하고, 언론은 공포를 조장한다. 한편 체제에 저항하는 단체도 결국 자기 이익을 좇는다. ‘옳음’이 사라진 세계에서 개인의 선택은 더욱 중요해진다. 그래서 테오의 결단은 영웅적이지 않더라도 숭고하다. 그 행위는 거대한 구원이라기보단, 인간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도덕적 선택’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지금의 사회가 떠오른다. 이민자 갈등, 기후 위기, 미래에 대한 피로감. 쿠아론은 과거보다 미래를, 현실보다 인간을 말하고 있었다.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영화의 마지막, 안개 낀 바다 위에서 ‘미래호(Tomorrow)’가 천천히 다가온다. 테오는 숨을 거두지만, 그의 손에 안긴 아기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 목소리는 관객에게 단 한 가지 진실을 남긴다. 희망은 절망의 끝에서 잉태된다. 아이의 울음은 세상의 부활이자, 테오가 남긴 신념의 상징이다.

칠드런 오브 맨은 SF의 외양을 띤 인문학적 영화다. 폭력의 잔혹함 안에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멸망의 세계 속에서 구원을 말한다. 현실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이 영화는 묻는다 — “그래도 너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쿠아론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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