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개봉한 '디스트릭트 9'은 남아공 상공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이 요하네스버그 인근 수용구역에 28년간 임시 수용되며 인간의 통제를 받는다는 참신한 설정을 선보인다. 닐 블룸캠프 감독의 2005년 단편영화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를 원작으로 장편화한 이 작품은 피터 잭슨이 제작과 배급을 맡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외계인 침공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완전히 뒤집었다는 점이다. 굶주리고 지쳐 도움이 필요한 난민으로 묘사된 외계인들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에 의해 억압받는 존재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형식과 암울한 리얼리즘이 빚어낸 세계는 관객을 강렬하게 몰입시킨다.
이 영화는 남아공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인 '디스트릭트 6'를 풍자한 작품으로, 영화 속 인류가 외계인을 변방으로 쫓아낸 것처럼 1970년대 남아공 백인 정부가 흑인들을 강제 이주시킨 역사를 반영한다. 이 영화는 SF의 옷을 입은 현 사회 비판 영화로,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불공정,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비커스의 변화는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강화한다. 프런을 탄압하는 일에 앞장서던 비커스가 점차 외계인으로 변하면서 그들의 처지를 직접 겪게 되고, 인간의 모순과 잔혹성이 사무치게 전달된다. 사회적 추락을 겪으면 연락이 끊기고, 승진하면 과일박스를 받는 현대 사회의 씁쓸한 현실을 영화는 냉정하게 담아낸다.

피터 잭슨이라는 이름은 이 영화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반지의 제왕으로 절정의 영상미와 스펙터클을 보여주며 아카데미에서 온갖 상을 휩쓸었던 잭슨 감독은, 초창기 저예산 B급 스플래터 무비로 경력을 쌓았다. 그의 초기작들은 제한된 예산으로도 생명력 넘치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제작 철학이 '디스트릭트 9'에도 녹아있다. 3천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2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이 영화의 흥행은 피터 잭슨의 효율적 제작 노하우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닐 블룸캠프 감독은 이 데뷔작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확립했다.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을 기반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의 효과적 합성, 비디오 게임을 연상시키는 역동적 카메라워크와 과감한 폭력 묘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CG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고, 다큐 형식으로 진행되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급박해지는 긴장감 속에 몰입하게 만든다. 남아공에서 자란 그는 다양한 인종과 집단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소수자에 대한 표현과 인식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로저 이버트는 창의적인 영화로서 더 깊이 파고들 가능성이 있었는데 막판에 평범한 스페이스 오페라가 된 것 같은 감이있다. 중반부가 다소 지루하고 캐릭터 아크에 거친 부분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주인공의 판단에 대한 아쉬움과, 고도의 문명을 가진 외계인의 지능이 낮다는 설정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잔인한 장면들도 호불호가 갈린다. 절단된 팔다리와 고문 장면 등 극도로 사실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폭력이 담겨있어 어린 관객에게는 부적절하다. 다만 대부분의 리뷰어들은 이러한 폭력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필수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로튼 토마토에서 전국 언론 영화 평론가들의 90%가 호평했고,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른 이 영화는 명실상부한 수작이다. 시각적 성취와 날카로운 사회 비평의 조화,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관련성 있고 우울할 정도로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기괴하고 창의적이며 대담하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해서는 안 될 것들을 과감히 시도한다. 에일리언이나 터미네이터 같은 고전은 아니지만, 깊이와 스타일을 갖춘 효과적인 SF 영화이며, 지난 20년간 가장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SF 영화 중 하나다.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을 원한다면, '디스트릭트 9'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올해 최고의 SF 영화로 꼽을 만한 작품으로, 영화를 본 후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이 남는다. 피터 잭슨의 제작 역량과 닐 블룸캠프의 독창적 비전이 만나 탄생한 이 수작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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